'용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0.11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 본 회퍼
  2. 2010.07.26 한 여자, 두 남자 (13)
  3. 2010.07.15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10)
좋은 글 소개2010.10.11 14:08

본회퍼

본회퍼의 모습

수용소

수용소


본회퍼 (1906. 2. 4 독일 프로이센 브레슬라우~1945. 4. 9 바이에른 플뢰센베르크) 는
나찌가 독일을 장악했던 시절의 개신교 목사였다

"고백교회운동" 이라는 반 나찌 저항운동의 지도자급 인사로 활동하며
점점 나찌정부에 탄압을 받게 된다.

점점 위험해지는 그를 소중히 여긴 미국의 나인 홀드 니버 교수의 초청에 의해
2주간 미국에 머물면서 망명을 고려하지만
그는
"만일 지금 내 동포와 함께 시련을 당하지 않는다면
나는 전쟁이 끝난 뒤 독일에서 그리스도교인의 삶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할 권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라는 편지를 쓰고 독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작전을 감행하다
그것이 발각되면서 1943년 4월 5일 체포되어 베를린에서 옥살이를 시작하고
1944년 7월 20일 결정적 증거들이 밝혀지면서
나찌의 항복을 얼마 앞두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아는 것과 행함의 일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도 동포들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에 죽음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수용소안에서의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위엄있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더라도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우리의 삶을 보며
그의 삶의 당당함과 평안을 생각해보게 된다.

밑의 글은 수용소에서 쓴 그의 시이다.





나는 누구인가

디트리히 본회퍼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든, 신은 안다.
내가 그의 것임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국제옥수수재단
좋은 글 소개2010.07.26 14:12


한 여자, 두 남자

햇빛



1973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그날부터 내겐 시동생과 함께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장남과 차남이 세상을 떠난 뒤라 셋째인 남편이 동생들을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시동생은 그때 이미 직업도 취미도 소일거리마저 없는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하다 일어난 사고로 지병인 간질을 앓게 된 시동생은 가족들의 맹목적인 보호 아래 성격은 비뚤어지고 오로지 자신만 아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무시 당하는 가여운 사람이었다.
시동생은 봄만 되면 가출을 했다.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다가 쓰러져 이곳저곳 파출소와 병원으로 그를 찾으러 다녀야 했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까지 신생아를 돌보듯 일일이 챙겨 줘야 했다. 그 즈음 나는 내 인생에는 남편 외에 한 남자가 더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집과 가까운 곳에 시동생이 지낼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다. 딸 시집 보내는 엄마처럼 옷장, 이부자리 등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그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말이 독립이지 모든 것을 형과 형수가 해결해 주는 종전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즈음 시동생은 술로써 삶의 위안을 찾았고, 지병이 있는 그에게 술은 독약이라고 충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바람이 몹시 불던 늦가을 밤,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시동생이 술을 마시고 무단횡단하다가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라고 했다. 중상을 입은 시동생은 연이은 뇌수술로 의식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이내 기억과 감각의 끈을 놓고 말았다. 말 그대로 식물인간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간병인을 두었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의사는 정상적인 회복은 기대할 수 없지만 잘 간호하면 평균수명은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신이 없는 삶이 온전한 삶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산 목숨을 끊을 수는 없는 일, 나는 큰 결단을 내리고 시동생을 간병하기로 작정했다. 날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중환자실로 옮기면서 기도했다.

'제게 용기와 힘을 주세요…. 난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시동생은 모든 감각을 잃고 아침이면 오줌에 절은 눅눅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커튼을 친 뒤 시동생의 옷을 벗기고 얼굴을 씻기고 면도를 하고 온몸을 닦아 내고 기저귀를 갈고…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이 설사와 변비가 번갈아 오는 시동생의 손톱 사이에 끼어 있는 변을 칫솔로 닦아 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정말 내 마지막 인내심마저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이게 지옥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시동생에게는 두 살 위의 같이 늙어 가는 형수뿐 아무도 없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남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사람 같았다. 혈육의 고통으로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 그를 한순간 이해하다가도 나를 지치게 하는 시동생의 감정 없는 눈을 보노라면 내 고통과 울분은 여지없이 남편에게로 꽂혔다. 그때 난 다정한 말 한마디가 너무도 절실했지만 남편은 입을 꾹 다물 었다. 엄청난 현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남편이 미웠다.

아,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렇게도 변질될 수 있구나. 인생에 대한 회의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내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졌다.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평균 수명을 살 거라는 시동생은 패혈증으로 한 많은 인생의 막을 내렸다. 그 운명의 순간에 바위 같던 남편이 동생의 차가운 손을 잡고 울먹였다. “세상 사는 동안 고생만 했구나. 저 세상에 가서는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하거라.” 남편도 시동생도 나도 모두 죽음 앞에서는 나약하기만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시동생은 갔지만 그는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려놓았다. 그의 장례가 끝나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과제도 끝나고 사람들은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그제야 내 손을 잡으며 “당신, 정말 고생 많았다”고 애정 어린 말을 했다.

시동생은 내게 많은 것을 주고 갔다. 그가 살아생전에도 나는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시동생은 우리집에 오는 모든 액운을 몸으로 막는 사람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랬다. 우리집은 시동생이 아픈 것 말고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아이들 모두 탈없이 건강하게 자라 주었고 당시 중학생이던 늦둥이 아들은 일찍 철들어 늘 엄마사랑이 부족할 텐데도 불만은커녕 엄마를 위로하는 든든한 청년으로 자랐다. 내 힘들었던 삶이 자양분으로 녹아 아이들 성장의 토양에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천연의 비료가 되기라도 한 걸까.

한 달 뒤면 시동생 3주기다. 남편과 나는 서글서글한 눈매의 시동생 영정을 들고 그의 안식처를 찾아갈 것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다하는 날 어디에선가 시동생을 만난다면 그는 “형수요, 그 동안 어찌 지냈능기요” 하며 따뜻하게 내 손을 잡을 것만 같다.


             황연숙님 (가명) 
             월간《좋은생각》 2001년 12월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좋은 글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 시라쿠 사거리에 있는 동상  (12) 2010.07.28
남편을 살리고 떠난 아내  (16) 2010.07.27
한 여자, 두 남자  (13) 2010.07.26
다시 한번 기회를  (14) 2010.07.23
행복한 동행 - 난민촌의 눈동자들  (13) 2010.07.22
'믿어주는' 칭찬  (10) 2010.07.21
Posted by 국제옥수수재단
좋은 글 소개2010.07.15 14:29
한 여인의 이야기...
여인

 재판을 하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 이러한 만남 가운데 오래전에 법정에서 증인으로 만났던 한 여성을 잊을 수가 없다. 단 한 번 만났지만 그녀가 보여 준 기품과 용기는 감동적이었다.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우울해질 때면 그녀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얻곤 한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사건에 관해 증언하려고 법정에 출석했다. 남편이 그녀 몰래 여섯 살, 네 살 된 두 딸에게 독극물이 든 우유를 먹여 절명하게 했던 것이다. 남편 자신도 남은 우유를 마셨으나 목숨을 건졌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 ……

그녀에게도 딸들은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사이 남편은 여러 번 실망스러운 일들을 저질러 그녀를 힘들게 했고, 애정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두 딸의 출생 때부터 죽기 전날까지 같이 지낸 일상과 딸들이 세상을 돕는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세 모녀가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깔깔대며 뒹구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녀는 힘든 생활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다. ……

그러나 남편은 시간이 갈수록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에 빠져 딸들과 동반 자살을 결심했다. 딸들이 자기처럼 비참한 삶을 살 바에야 차라리 일찍 세상을 떠나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피고인 신문이 끝난 후, 재판부 직권으로 그녀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형량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법정에 나온 그녀는 예상보다 몸이 훨씬 더 불편해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 심장병과 척수염, 류머티즘으로 날마다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있어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다고 했다.

증언대에서 그녀는 딸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기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흐느꼈다. 그러나 곧 눈물을 거두고 차분한 태도로 남편에 관하여 증언했다. 처음에는 분노로 남편을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남편과 살 수도 없고 애정도 전혀 없지만, 재판부에 편지를 낸 이유는 남편이 '정당한' 판결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미워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서 받을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죽게 한 것이며, 잘못은 남편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약한 남편에게 가벼운 형을 주어 한 번이라도 사람답게 살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증언을 끝맺었다. ……

지독한 가난 속에서 중병을 앓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밝게 키워 온 그녀 내면의 힘. 이것이 삶에 대한 진정한 용기 아닐까? 인간의 가치는 결코 외적인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녀야말로 작고 약한 외모 안에 진정으로 위대한 힘을 가진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에게 온몸으로 깨우쳐 준 스승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처럼 '훌륭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감히 고백한다.

- 윤재윤 판사의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중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좋은 글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의 지혜와 경험  (12) 2010.07.19
날 키운 건 부러움이다.  (9) 2010.07.16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10) 2010.07.15
스타들의 사랑 나눔  (11) 2010.07.13
서번트신드롬(savant syndrome)  (6) 2010.07.12
나를 잊지 마세요  (5) 2010.07.09
Posted by 국제옥수수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