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 프로젝트 : 지구촌 빈곤아동돕기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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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제옥수수재단
좋은 글 소개2010.11.26 13:58






그것은 희망입니다


내 손에 펜이 한 자루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펜으로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편지도 쓸 수 있으니까요

내 입에 따뜻한 말 한마디 담겨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말로 남을 위로 할 수 있고 격려할 수 있고
기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내 발에 신발 한 켤레가 신겨져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발로 집으로 갈 수 있고 일터로 갈 수 있고
여행도 떠날 수 있으니까요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눈물로 가난과 슬픔으로 지친 이들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으니까요

내 귀에 작은 소리 들려온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과 아름다운 음악과
자연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내 코가 향기를 맡는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은은한 꽃 향기와 군침 도는 음식 냄새와
사랑하는 이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내 곁에 좋은 친구 한 사람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친구에게 내 마음 털어놓을 수 있고
지칠 때는 기댈수 있고
따뜻한 위로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내 가슴에 사랑 하나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 "좋은생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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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제옥수수재단
좋은 글 소개2010.07.26 14:12


한 여자, 두 남자

햇빛



1973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그날부터 내겐 시동생과 함께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장남과 차남이 세상을 떠난 뒤라 셋째인 남편이 동생들을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시동생은 그때 이미 직업도 취미도 소일거리마저 없는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하다 일어난 사고로 지병인 간질을 앓게 된 시동생은 가족들의 맹목적인 보호 아래 성격은 비뚤어지고 오로지 자신만 아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무시 당하는 가여운 사람이었다.
시동생은 봄만 되면 가출을 했다.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다가 쓰러져 이곳저곳 파출소와 병원으로 그를 찾으러 다녀야 했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까지 신생아를 돌보듯 일일이 챙겨 줘야 했다. 그 즈음 나는 내 인생에는 남편 외에 한 남자가 더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집과 가까운 곳에 시동생이 지낼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다. 딸 시집 보내는 엄마처럼 옷장, 이부자리 등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그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말이 독립이지 모든 것을 형과 형수가 해결해 주는 종전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즈음 시동생은 술로써 삶의 위안을 찾았고, 지병이 있는 그에게 술은 독약이라고 충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바람이 몹시 불던 늦가을 밤,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시동생이 술을 마시고 무단횡단하다가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라고 했다. 중상을 입은 시동생은 연이은 뇌수술로 의식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이내 기억과 감각의 끈을 놓고 말았다. 말 그대로 식물인간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간병인을 두었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의사는 정상적인 회복은 기대할 수 없지만 잘 간호하면 평균수명은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신이 없는 삶이 온전한 삶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산 목숨을 끊을 수는 없는 일, 나는 큰 결단을 내리고 시동생을 간병하기로 작정했다. 날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중환자실로 옮기면서 기도했다.

'제게 용기와 힘을 주세요…. 난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시동생은 모든 감각을 잃고 아침이면 오줌에 절은 눅눅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커튼을 친 뒤 시동생의 옷을 벗기고 얼굴을 씻기고 면도를 하고 온몸을 닦아 내고 기저귀를 갈고…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이 설사와 변비가 번갈아 오는 시동생의 손톱 사이에 끼어 있는 변을 칫솔로 닦아 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정말 내 마지막 인내심마저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이게 지옥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시동생에게는 두 살 위의 같이 늙어 가는 형수뿐 아무도 없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남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사람 같았다. 혈육의 고통으로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 그를 한순간 이해하다가도 나를 지치게 하는 시동생의 감정 없는 눈을 보노라면 내 고통과 울분은 여지없이 남편에게로 꽂혔다. 그때 난 다정한 말 한마디가 너무도 절실했지만 남편은 입을 꾹 다물 었다. 엄청난 현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남편이 미웠다.

아,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렇게도 변질될 수 있구나. 인생에 대한 회의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내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졌다.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평균 수명을 살 거라는 시동생은 패혈증으로 한 많은 인생의 막을 내렸다. 그 운명의 순간에 바위 같던 남편이 동생의 차가운 손을 잡고 울먹였다. “세상 사는 동안 고생만 했구나. 저 세상에 가서는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하거라.” 남편도 시동생도 나도 모두 죽음 앞에서는 나약하기만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시동생은 갔지만 그는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려놓았다. 그의 장례가 끝나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과제도 끝나고 사람들은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그제야 내 손을 잡으며 “당신, 정말 고생 많았다”고 애정 어린 말을 했다.

시동생은 내게 많은 것을 주고 갔다. 그가 살아생전에도 나는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시동생은 우리집에 오는 모든 액운을 몸으로 막는 사람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랬다. 우리집은 시동생이 아픈 것 말고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아이들 모두 탈없이 건강하게 자라 주었고 당시 중학생이던 늦둥이 아들은 일찍 철들어 늘 엄마사랑이 부족할 텐데도 불만은커녕 엄마를 위로하는 든든한 청년으로 자랐다. 내 힘들었던 삶이 자양분으로 녹아 아이들 성장의 토양에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천연의 비료가 되기라도 한 걸까.

한 달 뒤면 시동생 3주기다. 남편과 나는 서글서글한 눈매의 시동생 영정을 들고 그의 안식처를 찾아갈 것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다하는 날 어디에선가 시동생을 만난다면 그는 “형수요, 그 동안 어찌 지냈능기요” 하며 따뜻하게 내 손을 잡을 것만 같다.


             황연숙님 (가명) 
             월간《좋은생각》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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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소개2010.07.23 14:38

다시 한번 기회를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자의 몸으로 힘든 노동일을 하셨고, 철없던 나는 천방지축 날뛰며 경찰서를 들락거렸습니다. 면회 올 때마다 당신 탓이라며 울던 어머니는 결국 자식의 출소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사람 구실하고 살아야 할 텐데….”
  마지막까지 자식 걱정에 눈물 지으셨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모범수로 생활하며 자격증을 따 출소한 뒤, 어머니 말씀대로 세상과 어우러져 평범하게 살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와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하면서 다시금 흔들렸습니다. 혼자 키우던 아들은 엄마를 찾지 않고 잘 자라 주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아들을 아내에게 보냈습니다.

  또다시 범법자가 되어 이곳에 들어온 지 1년.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른 아침 아들을 깨워 등교시키는…. 꿈에서 깨어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어디선가 아들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언제쯤 아빠랑 살 수 있어?”

  어머니도 나처럼 곁에 없는 자식을 그리워하며 평생 사셨겠지요. 그 애타는 마음을 이제야 깨닫고 눈물을 쏟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아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위해, 남은 인생을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렵니다. 세상에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해 봅니다.

  조영수 님(가명) | 교도소에서
                                                                                                                                      좋은 생각

 우리는 쉽게 남을 판단하곤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이 이야기는 없고, 나의 이야기 나의 생각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 해 본다면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의 삶 뿐만 아니라 나의 삶 역시 조금 더 여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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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촌여인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UNHCR(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이라 쓴 간판이 나무 그늘 밑에 세워져 있다. 탄자니아 키고마 난민촌에 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한 아이가 큼직한 성인용 신발 윗부분을 끈으로 묶어 조이고 비칠비칠 걸어간다. 그러나 난민캠프 아이들 대부분은 맨발이다. 할 일도 없이 그냥 몰려다니고 있다. 그 와중에도 텐트에 옷이나 비누 등을 차려 놓은 생필품 가게가 있고, 약국도 있다. 피스프렌드의 난민촌 페스티벌을 도와주는 키고마 YMCA 스태프들이 깃발을 흔들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축제는 콩고의 토착 그리스도교라 할 수 있는 킴방구교 캠프에서 진행되었다. 인원이 천여 명에 불과하고 질서 유지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난민들이 진행하고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출연하며, 또한 관객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축제는 먹을거리 때문에 더욱 신이 난다. 무엇이든 현지 조달이 원칙인 우리의 급식 지원팀은 키고마 시내를 뒤져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과 과일, 음료 등을 실어 왔다. 또한 난민 중에서 요리 팀을 뽑아 동아프리카 대표 음식인 우갈리와 수꾸마, 마칸데 등을 직접 요리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 손으로 만든, 너무나 역동성 있는 그들의 생명감과 끼로 채워진 페스티벌은 우려에 찬 시선으로 나를 보던 보수적인 UN직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면서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페스티벌이 끝난 늦은 밤, 나는 벽돌로 쌓은 관리지구 담 안에 제공된 텐트에 누워 UN경비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단잠이 들었다. 그리고 페스티벌이라는 짐과 긴장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아침이 되자 여러 사람의 눈동자가 차례차례 내 뇌리를 스쳤다.


영정사진을 찍어 주자 너무나 고마워하던 에이즈 환자, 아픈 아내를 위해 음악을 들려주던 사내와 그 순간에도 화장을 하던 가난한 여인,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춤을 추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던 청년이 거기에 있었다. 배고픔보다 모욕을 당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가장 힘들 때에도 남을 도우려는 인간의 자부심을 보여 주던 사람들. 아이 하나가 나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언제나 몽롱하고 졸린 듯한 나의 눈을….


            
                                                                                                    황학주  《행복한동행》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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