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스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7.16 날 키운 건 부러움이다. (9)
  2. 2010.07.15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10)
좋은 글 소개2010. 7. 16. 15:27
친구

날 기운 건 부러움이다.


나는 녀석이 부러웠다. 밤낮으로 학교 공부에만 매진해서 겨우 대학에 턱걸이한 나와는 달랐다. 읽은 책도 많았고 아는 영화와, 음악도 많았다. 옷차림도 시골 어머니가 동네 양복점에서 맞춰 준 양복을 주로 입고 다녔던 나와 달리 녀석은 늘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캐주얼 차림이었다. 그때 녀석이 신고 다니던 신발이 랜드로버였다. 부러움은 열등감이었다. 나는 애써 그와 나는 다르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그 열등감을 감추려고 했다. 녀석을 피해 다녔다. 다른 사람이니 같이 안 다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피할수록 녀석은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에 있었다. 수업 시간도 거의 같았다. 모임에 나가면 언제나 녀석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옆자리에 와서 앉기까지 했다. 끝내는 내가 가입한 글쓰기 동아리에서도 마주쳤다. 어디서나 녀석의 논리 정연한 말솜씨와 풍부한 교양은 빛났고, 글은 언제나 우아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녀석의 우아함을 빛내기 위해 동원된 액세서리로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액세서리의 운명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녀석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다름이 영원한 열등을 의미한다면 이제는 같아지려고 노력해야만이 그 열등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처음엔 녀석의 말투, 표정, 옷차림을 흉내 냈다. 그러나 좀 더 제대로 흉내를 내자니 녀석이 언급했던 책들을 찾아 읽어야 했다. 영화를 찾아보고, 음악을 들으며 점점 더 나는 녀석처럼 되어 갔다. 동아리 모임에서 무언가를 얘기하다가, 녀석과 똑같이 말하는 것을 깨닫고는 혼자 민망해 한 적도 있었다.

이상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녀석의 말이 다 맞지는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녀석도 잘 모르는 개념을 그 나이의 치기로 포장하거나, 과도한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혀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영화나 음악의 기본적인 정보들도 대부분 사실과 달랐다. 학교 식당에서 추궁 끝에 사르트르의《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녀석이 실은 읽지 않았음을 실토하게 했던 그 10월의 어느 날, 식당 창문으로 비껴들던 승리의 가을빛을 나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 뒤로 녀석과 나는 4년 내내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다. 지적인 동지로, 경쟁자로, 서로를 부러워하면서. 단언하건데 내 대학 시절 공부의 대부분은 녀석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었다. 녀석에 대한 부러움이 나의 가장 큰 스승이었다.

육상효 님 | 영화감독·인하대 교수
-《행복한동행》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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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제옥수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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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구나 롤모델을 찾고, 또 실망도 하게 되죠^^..
    인간이라는 것이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누구나 남들보다 열등한 점도 있고
    우월한 점도 있기 마련이죠^^..
    행복한 하루 되세요^^..국제옥수수재단님^^..

    2010.07.16 17: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습니다..
      그런데 정말 현실속에서
      그 자신의 열등감에서 빠져나오기란
      정말 힘든일인것같네요..^^

      오늘은 월요일이네요^^
      다시 한 번 화이팅입니다!!방문감사드려요^^

      2010.07.19 13:14 [ ADDR : EDIT/ DEL ]
  2. 좋은 친구를 사귀었군요~

    2010.07.16 18: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결국, 그 친구를 좋은친구로 만든건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였을까요?^^
      좋은친구를 두고도
      열등감에만 빠져
      많은 기회를 놓친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더 많을 거란 생각이드네요^^

      2010.07.19 13:17 [ ADDR : EDIT/ DEL ]
  3. 그 부러움이 성숙할수 있도록 했지만 친구분에게서는 많이 실망하셧겠습니다.
    그안에서 본인의 성장이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0.07.17 12: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 친구 역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것을 채우기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정말 서로에게 의미있는 친구들인것 같네요~^^

      점심이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
      조금 피곤한 듯하네요^^;;방문감사드려요~
      남은하루도 좋은하루 만드세요^^

      2010.07.19 13:21 [ ADDR : EDIT/ DEL ]
  4. 강력한 적군이 눈앞에 있을때 성공의 지름길로 들어선다네요..
    그말이 생각납니다..ㅎㅎ
    주말..즐거이 지내세요

    2010.07.17 14: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드디어 승리하는 순간이군요..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0.07.17 17: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맞습니다..
      노력후에 얻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죠^^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드려요^^

      2010.07.19 13:24 [ ADDR : EDIT/ DEL ]

좋은 글 소개2010. 7. 15. 14:29
한 여인의 이야기...
여인

 재판을 하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 이러한 만남 가운데 오래전에 법정에서 증인으로 만났던 한 여성을 잊을 수가 없다. 단 한 번 만났지만 그녀가 보여 준 기품과 용기는 감동적이었다.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우울해질 때면 그녀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얻곤 한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사건에 관해 증언하려고 법정에 출석했다. 남편이 그녀 몰래 여섯 살, 네 살 된 두 딸에게 독극물이 든 우유를 먹여 절명하게 했던 것이다. 남편 자신도 남은 우유를 마셨으나 목숨을 건졌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 ……

그녀에게도 딸들은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사이 남편은 여러 번 실망스러운 일들을 저질러 그녀를 힘들게 했고, 애정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두 딸의 출생 때부터 죽기 전날까지 같이 지낸 일상과 딸들이 세상을 돕는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세 모녀가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깔깔대며 뒹구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녀는 힘든 생활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다. ……

그러나 남편은 시간이 갈수록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에 빠져 딸들과 동반 자살을 결심했다. 딸들이 자기처럼 비참한 삶을 살 바에야 차라리 일찍 세상을 떠나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피고인 신문이 끝난 후, 재판부 직권으로 그녀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형량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법정에 나온 그녀는 예상보다 몸이 훨씬 더 불편해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 심장병과 척수염, 류머티즘으로 날마다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있어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다고 했다.

증언대에서 그녀는 딸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기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흐느꼈다. 그러나 곧 눈물을 거두고 차분한 태도로 남편에 관하여 증언했다. 처음에는 분노로 남편을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남편과 살 수도 없고 애정도 전혀 없지만, 재판부에 편지를 낸 이유는 남편이 '정당한' 판결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미워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서 받을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죽게 한 것이며, 잘못은 남편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약한 남편에게 가벼운 형을 주어 한 번이라도 사람답게 살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증언을 끝맺었다. ……

지독한 가난 속에서 중병을 앓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밝게 키워 온 그녀 내면의 힘. 이것이 삶에 대한 진정한 용기 아닐까? 인간의 가치는 결코 외적인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녀야말로 작고 약한 외모 안에 진정으로 위대한 힘을 가진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에게 온몸으로 깨우쳐 준 스승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처럼 '훌륭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감히 고백한다.

- 윤재윤 판사의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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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제옥수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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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대단한 여인이로군요~

    2010.07.15 15: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내면의 힘이라는 것
      정말 누구도 흉내내거나 따라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제일 위대한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방문감사드려요~^^

      2010.07.16 14:08 [ ADDR : EDIT/ DEL ]
  2.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내면과 나의 내면의 차이가 무엇인지 무엇이 이토록 감동을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들게 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2010.07.15 17: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방문해주셨군요~감사합니다~
      혼자만 감당해내야만 했던 고통..
      그것말곤 답이 없겠죠?..
      저 역시 이 여인의 삶이 궁금해지네요...

      2010.07.16 14:17 [ ADDR : EDIT/ DEL ]
  3. 너그러움..
    관대함..
    아이들 아버지..
    그리고 남편에 대한 축은지심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시네요..
    그녀가 왜 거대해 보이는 것일까요..

    2010.07.15 21: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가족의 의미가 너무도 많이
      퇴색되어버린 지금..
      이글을 읽으면서
      이 여인에게 갖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2010.07.16 14:27 [ ADDR : EDIT/ DEL ]
  4. 동반자살..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권리로..무슨 권리로.. 정말 말이 안나옵니다....
    아이고;; 인사들려서..광분하고 갑니다^^;;..

    2010.07.15 22: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킬러리치님^^방문감사드려요~
      아무 힘없는 아이들의
      인생을 자신의 멋대로 빼앗가버리는
      어른들..이런..몹쓸짓... ...
      갑자기 저도 따라..흥분했네요;;

      2010.07.16 14:20 [ ADDR : EDIT/ DEL ]
  5. 아름답다고 할까요,아니면 엄숙하다고 할까요.
    종잡을 수 없지만 왠지 가슴을 후비는 내용이네요.

    2010.07.16 0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피터니믜 가슴을 후빈다는 표현이
      정말 딱인것 같네요...
      이 큰 슬픔과 고통을 이리 아름답게
      승화시킨 여인..세상 무엇보다
      고귀하게 느껴집니다~
      오늘도 방문 감사드려요~

      2010.07.16 14:25 [ ADDR : EDIT/ DEL ]